8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외국에서의 은행 업무와 금융 문화 – 계좌 개설부터 송금까지

  외국 생활에서 반드시 부딪히는 벽 중 하나는 은행 업무 다. 한국에서는 은행 업무가 비교적 단순하고 빠른 편이지만, 외국에서는 계좌 개설 하나부터 쉽지 않았다. 은행은 단순한 금융 기관이 아니라, 그 나라의 신뢰와 시스템을 보여주는 문화적 거울 이었다. 1. 계좌 개설 – 문턱의 차이 독일 독일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는 ‘거주지 등록증(Anmeldung)’이 필수였다. 집 계약서를 들고 시청에 가서 등록을 마치고, 그 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해야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은행원이 “왜 계좌가 필요한지”를 꼼꼼히 묻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돈을 맡기는 게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증명 을 요구하는 과정 같았다. 미국 미국에서는 계좌 개설이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여권, 비자, 학교 입학 허가서만 있으면 학생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계좌 유지비가 붙거나, 일정 금액 미만이면 벌금이 부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처럼 ‘무료 계좌’가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일본에서는 한자를 모르면 계좌 개설조차 쉽지 않았다. 신청서에 직접 한자로 주소와 이름을 써야 했고, 도장(印鑑)이 필수였다. ‘사인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절차에서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만큼 도장이 신분 보증 수단 으로 여겨지는 문화라는 걸 배웠다. 2. 인터넷 뱅킹 – 속도의 차이 한국의 인터넷 뱅킹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빠르고 편리하다. 휴대폰 하나로 계좌 이체, 공과금 납부, 증권 거래까지 즉시 가능하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종종 답답한 경험을 했다. 독일 : 송금에 ‘TAN 코드(일회용 비밀번호)’를 문자로 받아 입력해야 했고, 이체가 반영되는 데 하루 이상 걸렸다. 미국 : 은행 간 이체(Zelle, ACH)는 보통 1 3일이 소요됐다. 빠른 송금(Wire Transfer)은 가능했지만 수수료가 20 40달러나 했다. 영국 : ‘Faster Payment’ 제도가 있어 그나마 빠른 편이었지만, 한국만큼 실시간은 아니었다. 나...

외국에서의 의료 경험 – 병원, 약국, 보험 제도의 현실

외국 생활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차이 중 하나가 바로 의료 시스템 이다.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감기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회가 환자와 건강을 어떻게 대하는지 마주하게 된다. 한국에서 ‘의료 접근성’이 당연했던 나는, 외국에서의 병원·약국·보험 경험을 통해 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얻었다. 1. 병원 – 예약이 먼저, 기다림이 기본 독일 독일에서 병원을 가려면 먼저 **예약(Termin)**을 잡아야 했다. 급한 경우가 아니면 당일 진료는 거의 불가능했다. 예약을 잡고 가도 대기실에서 1~2시간은 기다리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진료를 받으면 의사가 환자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 충분히 시간을 내어 상담해 주었다. 한국처럼 ‘3분 진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의료 행위가 ‘대화’라는 점 이 인상 깊었다. 미국 미국에서는 병원비가 충격이었다. 감기 진료 한 번에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까지 청구되었다. 보험이 없으면 X-ray 한 장 찍는 데만 200달러가 넘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효율적이었다. 예약을 하면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응급실은 빠른 대응을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웬만한 증상은 참거나, 약국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일본 일본 병원은 한국과 비슷하게 접근성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초진료’라는 추가 비용이 있었다. 또한 전문의에게 가려면 먼저 동네 의원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를 단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덕분에 효율적이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번거롭게 느껴졌다. 2. 약국 – 약사가 곧 상담사 외국에서는 약국이 단순한 약 판매점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약사가 증상을 묻고, 의사의 처방 없이도 간단한 감기약이나 소화제를 추천해 주었다. 약사의 전문성이 매우 강조되었고, 상담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에서는 드럭스토어(예: CVS, Walgreens)가 편의점처럼 널리 퍼져 있어, 진통제·영양제·감기약을 쉽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약은 반드시...

외국의 음악과 공연 문화 – 거리 공연에서 오페라까지

  외국 생활에서 내가 가장 자주 부딪힌 문화적 충격 중 하나는 바로 음악과 공연 이었다. 같은 음악이라도 나라에 따라 즐기는 방식, 공연을 대하는 태도, 관객의 반응이 놀라울 만큼 달랐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버스킹부터 웅장한 오페라 극장까지, 음악은 늘 내 삶을 물들이는 배경음악이자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교실이었다. 1. 거리 공연 –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무대 런던 코벤트 가든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선 언제나 누군가 노래하거나 연주했다. 바이올린, 색소폰, 오페라 아리아까지. 심지어 로열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 가수가 거리에서 무료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우연히 ‘네순 도르마’를 들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느꼈다. “예술은 돈을 내야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도시는 이미 하나의 공연장이다.” 뉴욕 지하철 버스킹 뉴욕 지하철역은 작은 콘서트장이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재즈 밴드, 힙합 댄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렸다. 어떤 날은 통근길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관객들은 동전이나 지폐를 던져주며 즉석에서 호응했고, 공연자와 시민이 함께 도시의 소음을 음악으로 바꾸고 있었다. 2. 콘서트 – 에너지와 자유의 발산 미국에서 록 콘서트에 갔을 때, 나는 공연장이라기보다 축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모르는 이와 포옹을 나눴다. 한국의 콘서트가 정돈된 팬 문화 중심이라면, 이곳은 자유와 에너지의 폭발 이었다. 독일에서는 클래식 콘서트를 찾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장은 정숙함과 경건함이 흐르고 있었지만, 공연이 끝나자 관객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무대를 채웠다. 나는 클래식이 단순히 교양의 상징이 아니라, 여전히 대중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라는 걸 느꼈다. 3. 오페라와 발레 – 예술의 정수 비엔나에서 처음 본 오페라는 내게 충격이었다. 화려한 무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 가수들의 압도적인 성량. “아, 이것이 유럽 문화의 정수구나”라는 생각...

외국의 운동 문화 – 헬스장, 요가, 스포츠 모임 체험기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체력이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 긴장되는 언어 환경, 새로운 생활 리듬 속에서 몸과 마음이 금세 지친다. 그래서 나는 현지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과 전혀 다른 운동 문화 를 마주했다. 헬스장, 요가, 그리고 스포츠 모임까지, 외국의 운동은 단순한 체력 관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 이었다. 1. 헬스장 – 개인보다 커뮤니티 미국 헬스장 미국에서 처음 간 헬스장은 ‘피트니스 센터’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단순히 기구가 놓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영장·사우나·농구장까지 포함된 종합 문화센터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사람들의 태도였다. 거구의 사람들이 땀 흘리며 운동하면서도,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격려했다. 체형이나 실력에 대한 시선이 거의 없었다. 초보자가 기구 사용을 몰라 헤매면, 옆 사람이 먼저 다가와 친절히 알려주곤 했다. 헬스가 단순한 ‘몸 만들기’가 아니라, 자기 긍정과 커뮤니티의식 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 헬스장 독일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운동 코스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짐(gym)’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 참여형 운동’에 가까웠다. 트레이너가 “오늘은 상체 날!”이라고 외치며 그룹을 이끌었고, 참가자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며 땀을 흘렸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라는 이미지와 달리, 운동에서는 집단적 동기부여 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2. 요가 –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인도 인도 여행 중 참가했던 요가 클래스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관광객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현지 주민과 함께하는 수업이었는데, 수업의 절반은 실제 동작보다 호흡과 명상 에 집중했다. “요가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라는 스승의 말이 깊게 남았다. 서양 국가의 요가 미국과 유럽의 요가는 조금 달랐다. 헬스장에서 운영하는 요가 클래스는 피트니스의 한 장르로 인식되었고, ‘칼로리 소모’와 ‘다이어트’ 효과에...

외국의 카페 문화 – 커피 한 잔에 담긴 일상

 외국 생활에서 내가 가장 자주 찾은 공간은 집도, 학교도, 마트도 아닌 카페 였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도시의 리듬을 보여주는 작은 무대였다. 나라별 카페 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달랐고, 그 속에서 나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일상”을 배울 수 있었다. 1. 유럽의 카페 – 사색과 대화의 공간 프랑스 파리 파리의 카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였다. 길가에 늘어선 작은 원탁과 의자, 천천히 책을 읽는 사람들, 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예술가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머물기 위한 티켓 이었다. 나는 파리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두 시간 동안 앉아 있어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빠르게 소비하고 나가는 한국 카페와는 정반대였다.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카페 문화는 또 달랐다. 바리스타가 내주는 에스프레소를 바(Bar)에 서서 단숨에 마시고 나가는 풍경. 커피는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리셋하는 짧은 의식 이었다. 2. 북미의 카페 – 일과 연결된 공간 미국 스타벅스 같은 대형 체인 카페가 흔한 미국에서는, 카페가 곧 작업실 이었다. 노트북을 켜고 공부하거나 회의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특히 와이파이와 콘센트가 보장되는 카페는 ‘무료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다. 커피 맛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였다. 캐나다 캐나다 카페에서는 친절한 “How are you?” 인사와 함께 주문이 시작됐다. 처음엔 형식적이라 생각했지만, 점차 그것이 일상 속 작은 온기 임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커피 주문은 빠른 효율이 중요했다면, 이곳은 짧은 대화로 하루를 밝히는 과정이었다. 3. 아시아의 카페 – 변주와 실험 일본 일본의 카페는 세심함과 개성이 돋보였다. 메이드 카페, 애니메이션 테마 카페처럼 독특한 콘셉트가 발달했고, 전통 다도 문화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카페도 많았다. 커피 한 잔에 담긴 건 단순한 맛이 아니라 경험 자체 였다. 한국 (...

외국의 계절 행사 – 크리스마스 마켓, 추수감사절, 설날의 차이

 외국 생활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순간 중 하나는 계절 행사다. 한국의 설, 추석이 가족과 공동체의 시간을 강조한다면, 외국의 계절 행사는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가치관이 응축된 문화적 축제 였다. 나는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설날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경험하면서 그 차이와 공통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1. 크리스마스 마켓 – 따뜻한 빛으로 물드는 겨울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겨울이 시작되면 독일의 광장은 온통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변한다.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등 도시마다 특색 있는 시장이 열렸고, 나는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마시며 손끝이 얼어붙는 추위를 잊곤 했다. 장식품: 수공예 오너먼트, 나무 장난감, 양초 등은 “선물=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가치를 잘 보여주었다. 음식: 소시지, 슈톨렌(케이크), 구운 아몬드 향기가 골목을 채웠다. 분위기: 한국의 ‘연말 세일’과 달리, 여기는 소비보다는 함께 모여 즐기는 따뜻함 이 강조됐다. 북미의 크리스마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족의 연말 행사로 자리잡았다. 상점마다 세일이 많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집 안 장식이었다.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 아이들이 직접 꾸민 트리와 양말 장식에서 ‘가정 중심의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었다. 2. 추수감사절 – 가족과 식탁의 힘 미국에서 경험한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은 또 다른 세계였다. 한국의 추석과 가장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훨씬 단순했다. 음식: 칠면조, 매시드 포테이토, 크랜베리 소스, 펌킨파이. 의례: 특별한 제사나 종교적 절차 없이, 온 가족이 모여 “올해 우리가 감사한 것”을 한마디씩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의미: 조상 숭배보다 현재 살아 있는 가족의 연대 를 강조했다. 나는 초대받은 집에서 “네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도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외국에서의 고독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듯했다. 3. 설날 – 다른 시간의 시작 아시아권...

외국의 쇼핑 문화 – 마트, 시장, 그리고 가격 흥정의 기술

외국 생활에서 쇼핑은 단순한 ‘필수 소비’가 아니라, 그 사회의 생활 방식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형 마트, 동네 시장, 노점상, 그리고 흥정 문화까지…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르고, 때로는 정반대인 모습 속에서 나는 현지의 생활 리듬을 배웠다. 1. 대형 마트 – 시스템의 차이를 체감하다 미국의 월마트(Walmart) 처음 미국 월마트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규모에 압도됐다. 천장까지 쌓인 진열대, 전자제품부터 장난감, 심지어 자동차 용품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었다. 하지만 계산대에서 당황스러웠던 건, 가격표에 세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는 점이었다. 계산대에서 최종 가격이 예상보다 늘어나자, 순간적으로 계산이 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격표=최종 가격이었던 습관 때문에 생긴 혼란이었다. 독일의 알디(Aldi) 독일 마트는 또 달랐다. 알디 같은 저가 마트는 계산 속도가 번개처럼 빨랐다. 점원이 물건을 거의 던지듯 찍어내고, 손님은 옆에서 재빨리 장바구니에 담아야 했다. 한국의 “포장까지 친절하게” 문화와는 정반대였다. 효율성과 시간 절약이 최우선인 시스템이었다. 2. 시장 – 삶이 녹아 있는 풍경 스페인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 여기선 과일, 해산물, 고기, 향신료가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손님을 붙잡으며 “¡Muy barato!(아주 싸요!)”라고 외쳤다. 시끌벅적한 에너지가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수천 개의 상점이 미로처럼 얽힌 시장에서, 물건 하나 사는 데에도 흥정이 필수였다. 상인이 부르는 첫 가격은 절대 믿으면 안 됐다. “너를 특별히 생각해서 반값에 주겠다”는 말에 넘어갔다가는 현지인들이 웃을 정도였다. 결국 세 번 정도 주고받아야 적정 가격이 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3. 흥정 문화 – 숫자가 아니라 관계 흥정은 단순히 돈을 깎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집트 카이로 : 상인이 차를 내어주며 먼저 대화를 나누고, 한참 웃고 떠들다 가격 협상이 시...

외국에서의 집 구하기 – 부동산 문화와 시행착오

외국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큰 난관 중 하나가 바로 집 구하기 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가 몇 시간 안에 여러 집을 보고 계약하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에선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집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그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사회적 입문식 같은 과정이었다. 1. 첫 번째 시행착오 – “방은 있는데, 내가 조건에 안 맞는다” 독일에서 유학 초기, 집을 알아보기 위해 WG-gesucht(룸메이트 모집 사이트)를 통해 여러 방을 신청했다. 하지만 대부분 답장은 “Sorry, we already found someone” 혹은 아예 답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독일의 쉐어하우스(WG)는 단순한 ‘방 임대’가 아니라 함께 살 사람을 고르는 과정 이라는 것이다. 면접을 보러 가면, 기존 거주자들이 “요리 자주 하니?”, “담배 피니?”, “주말엔 주로 뭐 해?” 같은 생활 습관을 물어봤다. 나는 방을 보러 간 게 아니라 사람들과 인터뷰 를 보러 간 셈이었다. 2. 서류 전쟁 – 종이 한 장의 무게 집을 구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요구되는 서류였다. 고용 계약서 또는 학생 증명서 은행 잔고 증명 보증인(Guarantor) 서류 이전 집주인의 추천서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는 보증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 신분으로는 집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어떤 친구는 결국 “보증인 대행 회사”에 수수료를 내고서야 계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장벽이었다. 3.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 한국에서는 보증금과 월세만 정하면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문화 차이가 있었다. 독일 : 세입자 보호법이 강력해, 집주인이 쉽게 계약을 종료할 수 없다. 그래서 세입자 자격 심사가 엄격하다. 영국 : 계약서에 명시된 규정이 매우 세세하다. 가구 하나를 옮길 때도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 : 아파트 매니지먼트가 집주인을 대신해 모든 걸 관...

외국 도서관과 책 문화 – 조용한 배움의 성지

외국 생활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 중 하나는 바로 도서관 이었다.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농축된 작은 성지였다. 도서관은 나라별로 운영 방식과 분위기가 달라, 그곳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현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1. 첫 만남 – ‘열린 공간’이라는 충격 한국에서의 도서관은 대체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 시험 준비의 장소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캐나다 밴쿠버의 공공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았다. 아이들은 동화책 코너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어른들은 신문 코너에서 담소를 나누며, 노숙인조차 편안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이 이렇게 열려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깨달았다. 이곳에서 도서관은 지식뿐 아니라 삶을 나누는 공공재 였다. 2. 나라별 도서관 문화 독일 – 학문적 깊이의 공간 독일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면 책 냄새보다 먼저 느껴지는 건 엄격한 정숙함 이었다. 책장은 높고 빽빽하며, 오래된 고서가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단순히 시험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토론을 위해 모여 앉아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했다. 도서관은 단순한 ‘공부방’이 아니라, 지적 대화를 위한 거점 이었다. 일본 – 세밀한 배려 일본 도서관은 청결함과 세심함이 돋보였다. 책 정리 상태가 완벽했고, 독서등·개인 칸막이 등 작은 배려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행사와 노인들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있어, 세대가 함께하는 도서관 이었다. 미국 – 생활 밀착형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도서 대출을 넘어섰다. 영어 회화 수업, 무료 컴퓨터 이용, 취업 상담 등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운영됐다. 한 번은 도서관에서 열리는 ‘Resume Workshop(이력서 작성 워크숍)’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레 네트워킹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은 곧 사회적 연결망 이었다. 3.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도서관에서 참 많은 인연...

현지 축제 참여기 – 카니발, 마라톤, 지역 축제의 열기

 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아마 축제에 뛰어드는 순간 일 것이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규칙적인 도시가, 축제 날이 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축제를 경험했고, 그 속에서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공유하는 방식 ’임을 깨달았다. 1. 카니발 –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다 독일 쾰른 카니발 쾰른 카니발은 단순한 퍼레이드가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며칠 동안 거대한 연극 무대 로 변신했다. 거리에는 피에로, 공주, 경찰, 심지어 슈퍼히어로까지 온갖 분장을 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간단히 고양이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갔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Helau!(축제 인사)”를 외치며 사탕을 던져주었다. 순간,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의 일원처럼 느껴졌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리우 카니발을 보러 간 경험도 있다. 삼바 학교들이 준비한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절정이었다. 거대한 깃털 장식, 북소리, 댄서들의 리듬. 그 열기 속에서 “춤과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는 힘이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2. 마라톤 – 달리면서 느낀 연대 나는 유럽에서 열린 한 도심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전문 주자가 아니어서 하프 코스를 신청했지만, 달리는 내내 감동을 받았다. 도로 양옆에서 응원하는 시민들, 물과 초콜릿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서로 모르는 주자들끼리 “You can do it!”을 외치며 격려하는 모습.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달렸다는 경험 자체가 축제 였던 것이다. 3. 지역 축제 – 삶의 리듬을 엿보다 소도시의 작은 축제는 대도시의 화려함과는 또 달랐다. 프랑스의 한 와인 마을에서는 매년 가을 수확제를 열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와인을 무료로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포도송이를 손에 쥐고 뛰어다녔다. 일본의 마츠리에서는 신사 앞에서 북과 춤이 어...

혼자 떠난 외국 소도시 여행에서 배운 것들 – 고요함 속에서 만난 나

  외국 생활에서 주말이나 짧은 휴가가 생기면 대부분 유명 관광지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소도시에 끌렸다. 화려한 명소 대신, 지도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마을 을 찾아 떠난 적이 있다. 그 여행은 불편했지만, 내 삶에 오래 남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1. 첫 소도시 여행 – 정류장에서부터의 낯섦 독일에서 유학 중, ‘뷔르츠부르크’라는 소도시를 혼자 가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내려서, 작은 역에 내렸을 때의 풍경은 놀라웠다. 인적 드문 플랫폼, 낡은 간판, 조용히 울리는 교회 종소리. 대도시의 번잡함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엔 불안했다.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하지만 역을 벗어나자, 좁은 골목길의 구석구석에서 현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2. 불편함이 준 배움 소도시 여행은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손짓발짓으로 대화해야 했고, 식당은 오후 2시만 지나도 문을 닫았다. 버스 배차 간격은 한 시간 이상이었다. 그런 불편 속에서 배운 건 기다림과 수용의 미학 이었다. 한국이나 대도시에서의 여행이 ‘계획적 소비’라면, 소도시 여행은 ‘즉흥적 수용’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냥 거리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었다. 3. 현지인의 일상 속으로 소도시에서는 관광객이 드물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장터에서 신선한 채소를 파는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누고, 공원 벤치에서 체스를 두는 노인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작은 교회에서 열린 합창단 연습에 잠시 앉아 음악을 들을 수도 있었다. 이런 순간들은 화려한 관광 명소에서 느낄 수 없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경험이었다. 4. 혼자라서 가능했던 것들 혼자였기에 일정이 자유로웠다. 발길 닿는 대로 골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서점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지나쳤을 풍경을, ...

에어비앤비·호스텔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 낯선 공간, 뜻밖의 인연

 외국 여행이나 단기 거주에서 숙소는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특히 에어비앤비와 호스텔은 호텔과 달리,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무대 였다. 나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낯선 공간이 어떻게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내는지를 배웠다. 1. 첫 에어비앤비 – 주인장과의 저녁 식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묵은 에어비앤비는 작은 아파트였다. 호스트인 안나는 따뜻하게 맞아주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낯선 이와 식사한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했지만, 안나가 직접 만든 감자수프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낯선 도시가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안나가 해준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자는 손님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가족이야.” 호텔이었다면 얻지 못했을, 인간적인 연결이었다. 2. 호스텔 도미토리의 진풍경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호스텔 도미토리에선 매일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8인실 방 안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한 침대 차이로 지냈다. 한쪽 침대에서는 프랑스인 배낭여행자가 기타를 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인 여행자가 컵라면을 나눠줬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수다는 마치 작은 유엔 총회를 방불케 했다. 물론 불편도 있었다. 코 고는 소리, 새벽에 들어오는 소음, 화장실 대기 줄… 하지만 그런 불편조차도 나중에는 “그때 그 호스텔”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 3. 뜻밖의 인연 – 길어진 우정 호스텔에서 만난 룸메이트와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와는 서로의 나라를 방문해 홈스테이까지 하게 되었고,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독일인 여행자는 훗날 내 졸업식에까지 참석했다. 짧은 만남이지만, 강렬한 교감이 있을 때는 그 어떤 인연보다 오래 간다. 4. 에어비앤비의 또 다른 얼굴 에어비앤비는 때로는 로컬 문화의 창구가 되었다. 호스트가 직접 동네를 안내해 주거나, 숨은 맛집을 소개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

현지 친구 따라간 숨은 로컬 맛집 탐험기 – 지도엔 없는 진짜 여행

 외국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현지 친구가 “내가 아는 맛집이 있는데 같이 갈래?”라고 말해줄 때다. 관광객이 가는 유명 식당이 아니라, 구석진 골목에 숨어 있는 로컬 맛집 은 언제나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1. 처음 경험한 로컬 맛집 – 충격의 가격과 분위기 독일 유학 시절, 현지 친구 한스가 데려간 맥주집은 관광객 리뷰 사이트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간판도 희미하고, 문 앞에는 오래된 나무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자극한 건 거품 가득한 생맥주 향. 벽에는 지역 축구팀의 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고, 손님들은 모두 단골처럼 보였다. 메뉴판엔 독일어 방언이 섞여 있어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한스가 추천해준 ‘슈바인학센(족발 요리)’을 한 입 먹는 순간, “아, 이게 진짜 독일 음식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가격은 관광지의 절반이었고, 맛은 두 배였다. 2. 로컬 맛집의 공통점 몇 나라를 거쳐 다녀보니 로컬 맛집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간판이 화려하지 않다 : 오히려 허름해 보이기도 한다. 단골 손님 중심 : 종업원이 손님 이름을 알고 인사를 건넨다. 메뉴는 적지만 강력하다 : 대표 메뉴 하나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 언어만 통한다 : 영어 메뉴판이 없을 때가 많아, 친구 도움 없이는 주문조차 힘들다. 이 모든 특징이 오히려 ‘관광객 함정’을 피해가는 장치였다. 3. 친구 따라간 숨은 맛집들 일본 – 오코노미야키 집 일본인 룸메이트가 데려간 오코노미야키 집은 골목 안 지하에 있었다. 좁은 가게 안에서 사장이 직접 철판에 반죽을 올리고, 손님이 취향껏 재료를 얹었다. 관광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번듯한 음식과 달리, 소박하고 따뜻한 ‘집밥 같은 맛’이었다. 스페인 – 타파스 바 스페인 친구 마리아는 “여긴 진짜 로컬만 오는 곳”이라며 타파스 바를 소개했다. 접시마다 올리브, 햄, 감자튀김이 조금씩 나왔는데, 계산은 빈 접시 개수로 했다. 시끌벅적한 분...

외국에서 국내여행하기 – 버스·기차 여행의 매력

 외국 생활에서의 여행은 꼭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진한 추억은 그 나라 안에서의 국내여행 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버스와 기차는 현지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창이었다. 1. 기차 – 풍경과 시간을 싣고 달리다 독일: ICE와 지역 열차 독일에서 처음 탄 고속열차 ICE는 한국 KTX와 비슷했지만, 차창 밖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포도밭과 성당,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이 창을 따라 스쳐갔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기차 안에서의 분위기였다. 어떤 승객은 책을 읽었고, 어떤 승객은 노트북으로 업무를 봤으며, 어떤 가족은 보드게임을 꺼내 놓고 함께 놀았다. 기차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활 공간 처럼 느껴졌다. 일본: 신칸센 일본 신칸센은 정시성과 청결함의 끝판왕이었다. 정차 시간은 단 몇 분, 청소팀이 순식간에 열차를 정돈하는 모습은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다. 좌석마다 도시락(에키벤)을 먹는 풍경은 그 자체로 일본만의 철도 문화를 보여줬다. 2. 버스 – 길 위에서 만나는 일상 스페인: 시외버스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건 끝없는 올리브 농장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현지인들이 작은 간식을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국의 빠르고 효율적인 고속버스와 달리, 이곳의 버스는 여유와 수다의 공간 이었다. 미국: 그레이하운드 미국의 그레이하운드는 또 다른 세계였다. 장거리 버스를 타면, 이민자·노숙인·학생·여행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차 안에 모였다. 때로는 조금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혼잡했지만, 동시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 을 보는 것 같았다. 버스 터미널의 삐걱거리는 의자, 자판기 커피 한 잔까지 모두 낯설지만 진짜 미국이었다. 3. 국내여행의 묘미 – “현지의 속도”에 맞추기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이 화려한 파노라마라면, 버스와 기차로 하는 국내여행은 한 장...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 다인종 일상의 현장

 외국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단순히 언어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의 얼굴, 피부색, 억양, 생활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 이었다. 다인종 사회는 말 그대로 매일이 ‘다름과의 공존’을 배우는 교실이었다. 1. 처음 마주한 다문화의 충격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택시 기사, 이민심사관, 옆자리 승객 모두 외모와 억양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하면 보통 소수였는데, 여기서는 내가 오히려 소수였다. 그때 깨달았다. 다인종 사회에서는 누가 다수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는 걸. 2. 학교에서의 경험 – 교실 속 작은 지구 내가 다닌 어학원에는 20여 개 국적의 학생이 함께 있었다. 브라질 친구는 수업 중 리듬을 타며 설명했다. 일본 친구는 조용히 메모를 빼곡히 적었다. 중동 출신 친구는 토론할 때 목소리가 크고 자신감이 넘쳤다. 같은 질문에도 나라별 답변 방식이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답은 하나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3. 직장에서의 공존 – 다양성의 힘과 갈등 다인종 직장에서는 협업이 도전이었다. 회의에서 미국인 동료는 즉각적으로 의견을 냈고, 아시아 출신 동료들은 신중히 침묵했다. 처음엔 의견 충돌이 잦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다양성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 이라는 걸. 한 프로젝트에서는 유럽식 구조적 사고, 아시아식 꼼꼼함, 남미식 유연함이 합쳐져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었다. 다문화가 단순한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생산성의 자산’임을 체감했다. 4. 차별의 순간들 물론 긍정적인 경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나를 향해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외친 적도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옆자리에 있던 흑인 여성 승객이 나를 대신해 항의해 주었다. 그때 느꼈다. 다인종 사회는 갈등도 많지만, 동시에 차별에 연대하는 힘 도 강하다는 걸. 5. 음식과 ...

외국의 대중교통 문화 – 지하철, 버스, 그리고 자전거 도시

  외국 생활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풍경 중 하나가 대중교통 이다. 지하철·버스·자전거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한 도시의 성격과 문화를 드러낸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교통 문화를 경험하면서, 한국과는 다른 매력과 불편, 그리고 배울 점들을 깊이 체감했다. 1. 지하철 – 도시의 혈관 런던 튜브(Tube) 런던에서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역사적 유물 같았다. 150년이 넘은 노선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점 : 촘촘한 노선망과 빠른 연결성. 단점 : 좁고 더운 객실, 잦은 지연. 그럼에도 시민들은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Mind the gap”이라는 안내 방송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런던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였다. 도쿄 메트로 반면 도쿄의 지하철은 정시성과 질서로 유명했다. 전광판에 “09:02 도착”이라면, 실제 열차는 초 단위 까지 맞춰 들어왔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의 극심한 혼잡 은 한국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도시 효율의 극단’과 ‘인간적 고단함’이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2. 버스 – 도시의 표정 독일 베를린 베를린의 버스는 느긋했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에게 “Danke!(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내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한국의 ‘정시성 중심’과는 다른, 인간 중심의 서비스 였다. 미국 뉴욕 뉴욕의 버스는 정류장에서 손을 흔들어야 서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와 승객 간의 대화가 활발했고, 노선표는 복잡했지만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한 번은 운전기사가 “오늘 기분이 좋으니 음악 틀어도 되겠냐”고 물으며 라디오 볼륨을 높여 분위기를 띄운 적도 있었다. 3. 자전거 도시 – 두 바퀴의 자유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진정한 자전거 천국이었다. 출퇴근길 정장 차림의 직장인, 아이를 태운 부모, 장을 본 시민까지 모두 자전거를 탔다. 자동차보다 자전거 우선권이 보장되는 도로 시스템은 인상적이었다...

외국에서 만난 의료 시스템 – 병원 진료와 보험의 현실

  외국 생활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아플 때다. 낯선 땅에서 병원에 가야 할 때, 언어 장벽과 제도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한국과 전혀 다른 의료 시스템 을 피부로 느꼈다. 1. 첫 번째 충격 – 예약 필수 문화 캐나다에서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란 건 “오늘 당장 진료 불가”라는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병원은 예약 시스템 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급하지 않으면 몇 주 뒤 진료를 받아야 했다. 한국처럼 ‘동네 병원 가서 바로 진료’는 불가능했다. 응급실(ER)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지만, 대기 시간이 5~6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가 흔했다. 목감기 증상으로 응급실에 갔던 지인이 새벽까지 대기하다 포기하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2. 비용의 장벽 – 보험 없이는 감당 불가 미국에서 경험한 의료비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단순 진료비: 150~300달러 응급실 입원비: 1만 달러 이상 간단한 검사조차 몇 백 달러 보험이 없으면 사실상 병원에 갈 수 없다. 나 역시 대학을 통해 제공되는 학생 보험 덕에 큰 부담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험 적용 범위 밖의 처방약이나 치과 진료는 여전히 비쌌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국가건강보험(NHS) 덕분에 대부분의 진료가 무료였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길고, 원하는 시술을 받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빠른 진료냐, 저렴한 진료냐”**의 선택지가 나라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3. 의사-환자 관계의 차이 한국에서 의사는 비교적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본다. 그래서 상담은 빨리 끝나지만, 환자 입장에선 “내 이야기를 충분히 못 했다”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반면 캐나다와 독일에서는 의사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들어준다. 30분 이상 면담하며 생활습관까지 꼼꼼히 묻는다. 대신 그만큼 대기 시간이 길다 . 의료 시스템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4. 문화적 차이 – 스스로...

현지에서 경험한 지역차별 – 도시 vs 시골 시선

  외국 생활에서 흔히 떠올리는 차별은 인종차별이지만, 막상 오래 살다 보면 더 은근한 벽이 존재한다. 바로 도시 vs 시골의 지역차별 이다. 나는 이 차이를 직접 체감하면서, 지역이라는 렌즈가 사람들의 태도와 시선을 얼마나 바꿔놓는지 깨달았다. 1. 도시에서의 환영, 시골에서의 경계 내가 처음 머문 곳은 캐나다 토론토였다. 다문화 도시답게, 나를 동양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히 낯설지 않았다. 심지어 택시 기사도 “어디서 왔냐” 물으며 한국 K팝 이야기를 먼저 꺼낼 정도였다. 하지만 학업 때문에 작은 도시로 옮겼을 때, 분위기는 달라졌다. 처음 만난 이웃은 웃으며 인사했지만, 동시에 “한국인은 처음 본다”는 말도 했다. 겉보기엔 호기심이었지만, 어딘가 나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선 이 그어져 있었다. 2. 지역 정체성과 자부심 시골이나 소도시 사람들은 **‘우리 지역만의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미국 남부의 한 소도시에서 지냈을 땐, 현지인들이 “우리는 뉴욕이나 LA 사람들과 다르다”고 자주 강조했다. 도시 사람 = 세련됐지만 차갑다 시골 사람 = 순박하지만 외부인에게는 보수적이다 이런 구도가 그들의 언어와 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나는 종종 “도시에 살다 온 애가 뭘 알겠냐”는 농담을 들었고, 동시에 “시골은 발전이 느리다”는 불평도 많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약간은 낮게 보는 묘한 긴장감이었다. 3. 언어와 억양에서 드러나는 차별 특히 언어에서 지역차별이 뚜렷했다. 영국 소도시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내 영어 억양을 흉내 내며 웃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은 런던 억양을 쓰는 친구들을 “거만하다”고 놀리기도 했다. 즉, 외국인 억양뿐 아니라 같은 언어권 내 지역 억양 도 차별의 근거가 된다는 걸 목격했다. 4. 교회와 시장에서 느낀 거리감 작은 도시에서 현지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겉으론 환영해줬지만, 모임 뒤풀이에서 대화는 늘 ‘고등학교 동창’ 이...

거리 시위와 집회 – 시민 참여 문화의 현장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거리 시위 나 집회 를 마주칠 때가 있다. 처음엔 단순한 교통 불편으로만 다가왔지만, 조금씩 참여하고 관찰하면서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시민 참여 문화의 핵심 장면 이었다. 1. 처음 마주한 시위 – 두려움과 호기심 독일 베를린에서 살던 어느 날, 집 앞 도로가 통제되었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처음에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한국에서 집회는 종종 충돌이나 갈등으로 보도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참가자들은 가족 단위로 나와 있었고, 아이들은 색연필로 그린 작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분위기는 긴장감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2.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의 장 유럽과 북미에서 집회는 단순히 불만 표출이 아니라, 시민이 목소리를 내는 공식적 채널 로 자리잡아 있었다. 환경 시위 : 스웨덴에서는 ‘Fridays for Future’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매주 금요일 학교 대신 시청 앞에 모였다. “지구를 구하자”라는 구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공부처럼 느껴졌다. 노동자 집회 : 프랑스 파리에서는 지하철 파업과 함께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벌어졌다. 통근에 큰 불편이 있었지만, 시민들은 대체로 “권리를 주장하는 건 당연하다”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인권 집회 :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성소수자 권리 집회가 열렸는데, 경찰조차도 축제처럼 안전을 지켜주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 3. 참여와 연대의 힘 흥미로운 건, 시위가 ‘나와 상관없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독일에서 난민 지원 집회에 우연히 참여한 적이 있다. 독일어가 서툴러 구호를 따라 하지 못했지만, 단지 거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도 **“나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의견을 표한다”**는 자각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집회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참...

현지 중고마켓(크레이그리스트·플리마켓) 활용법 – 낯선 물건에서 시작된 생활의 지혜

  외국 생활을 시작하면 누구나 처음 맞닥뜨리는 현실은 바로 살림을 새로 갖춰야 한다 는 점이다. 집을 빌리면 가구는 덩그러니 없고, 주방은 텅 비어 있으며, 생활용품 하나하나가 필요하다. 한국처럼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가 보편화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현지 중고마켓을 잘 활용하는 것이 생존 기술이다. 1.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의 세계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접한 플랫폼이 크레이그리스트였다. 사이트 디자인은 90년대 감성이지만, 여전히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카테고리 다양성 : 가구, 전자제품, 의류, 심지어 무료 나눔(Free)까지. 가격 협상 가능성 : 게시된 가격은 말 그대로 시작가다. 메일이나 문자로 “혹시 20% 할인 가능하냐” 묻는 건 자연스러운 문화. 위험 요소 : 가끔 사기꾼이나 수상한 글도 있다. “Western Union으로 먼저 송금해라”는 전형적 사기 문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내가 처음으로 산 건 30달러짜리 책상이었는데, 차가 없던 나는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이동해 직접 가져와야 했다. 책상 하나 옮기며 느낀 건, 외국의 중고마켓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교섭·물리력·유연성 이 모두 필요한 모험이라는 점이다. 2. 플리마켓(Flea Market)의 매력 주말이면 열리는 플리마켓은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이다. 물건의 스펙트럼 : 골동품, 수제 악세사리, 중고 옷, 책, 가정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흥정의 묘미 :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처음엔 비싸게 부르기도 하지만, 몇 마디 농담을 건네며 흥정을 시도하면 의외로 쉽게 깎아준다. 사람 냄새 : 인터넷 거래와 달리, 직접 눈을 보고 대화하며 사고판다.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까지 함께 가져오는 느낌이다. 나는 어느 플리마켓에서 5달러짜리 찻잔 세트를 샀는데, 판매자는 “이건 내 할머니가 쓰던 거야. 한국까지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외국에서 첫 신용카드 만들기 도전기 – 신용 없는 사람의 신용 쌓기

 한국에서 신용카드는 거의 “성인 통과 의례”처럼 쉽게 발급된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려 했을 때, 나는 **‘신용이 없는 사람은 신용카드를 가질 수 없다’**는 역설을 마주했다. 1. “신용이 없어서 신용카드를 못 만든다”는 벽 미국 은행 창구에서 카드를 신청했을 때, 담당자는 내 여권과 비자를 확인한 후 이렇게 말했다. “You don’t have a credit history.” 한국에서 꾸준히 신용카드를 쓰고 성실히 갚아온 기록은 여기선 무용지물이었다. 외국에서는 **‘신용 점수(Credit Score)’**라는 시스템이 사람의 신뢰도를 수치로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신입생처럼 점수가 아예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 순간 깨달았다. 외국 생활은 ‘언어 장벽’만이 아니라, 금융 장벽 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2. 첫 단계 – 체크카드와 보증금 카드 처음에 선택할 수 있는 건 ‘체크카드’였다. 은행 계좌를 열면 기본으로 발급되지만, 이는 단순히 가진 돈만큼 쓰는 카드라 신용 기록이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거치는 과정이 바로 **보증금 신용카드(Secured Credit Card)**다. 예를 들어, 500달러를 은행에 맡기면, 동일한 한도의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다. 사실상 ‘내 돈을 담보로 쓰는 신용카드’인데, 이걸 몇 달 성실히 사용하고 갚으면 비로소 신용점수가 쌓이기 시작한다. 나는 보증금 카드를 만들고 매달 작은 지출 – 커피, 교통비, 휴대폰 요금 정도만 결제했다. 그리고 결제일이 오기도 전에 미리 상환했다. 신용카드는 쓰는 것보다 **‘빚을 얼마나 성실히 갚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3. 외국 신용 문화가 가르쳐준 것 한국에서 카드는 “소비의 편리함”이었지만, 외국에서는 **“사회적 신뢰의 자산”**이었다. 집을 구할 때 집주인이 신용점수를 본다. 휴대폰 할부, 자동차 렌트, 심지어 취업 과정에서도 참고된다. 점수가 낮으면 대출 이자가 높아진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