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국내여행하기 – 버스·기차 여행의 매력
외국 생활에서의 여행은 꼭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진한 추억은 그 나라 안에서의 국내여행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버스와 기차는 현지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창이었다.
1. 기차 – 풍경과 시간을 싣고 달리다
독일: ICE와 지역 열차
독일에서 처음 탄 고속열차 ICE는 한국 KTX와 비슷했지만, 차창 밖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포도밭과 성당,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이 창을 따라 스쳐갔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기차 안에서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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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승객은 책을 읽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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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승객은 노트북으로 업무를 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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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은 보드게임을 꺼내 놓고 함께 놀았다.
기차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활 공간처럼 느껴졌다.
일본: 신칸센
일본 신칸센은 정시성과 청결함의 끝판왕이었다. 정차 시간은 단 몇 분, 청소팀이 순식간에 열차를 정돈하는 모습은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다. 좌석마다 도시락(에키벤)을 먹는 풍경은 그 자체로 일본만의 철도 문화를 보여줬다.
2. 버스 – 길 위에서 만나는 일상
스페인: 시외버스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건 끝없는 올리브 농장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현지인들이 작은 간식을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국의 빠르고 효율적인 고속버스와 달리, 이곳의 버스는 여유와 수다의 공간이었다.
미국: 그레이하운드
미국의 그레이하운드는 또 다른 세계였다. 장거리 버스를 타면, 이민자·노숙인·학생·여행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차 안에 모였다. 때로는 조금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혼잡했지만, 동시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버스 터미널의 삐걱거리는 의자, 자판기 커피 한 잔까지 모두 낯설지만 진짜 미국이었다.
3. 국내여행의 묘미 – “현지의 속도”에 맞추기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여행이 화려한 파노라마라면, 버스와 기차로 하는 국내여행은 한 장씩 천천히 넘겨보는 책 같았다. 작은 도시의 시장, 기차역 앞 빵집,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수다는 관광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독일의 작은 마을 역에서 내렸다가, 하루 종일 열차가 오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마을 광장에서 열리던 벼룩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불편’이 오히려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 셈이다.
4. 문화적 차이 – 규칙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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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지만, 때로는 파업으로 며칠 동안 멈추기도 한다. 이 불확실성이 여행을 더 즉흥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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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일본·한국은 정밀하고 효율적이다.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한 여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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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장거리 이동은 자유롭지만 시스템은 느슨하다. 대신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가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이 차이 속에서 깨달은 건, 여행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며 이동하느냐”**라는 것이다.
5. 외국 생활자를 위한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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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 활용: 유럽은 유레일 패스, 일본은 JR 패스처럼 장거리 여행자 전용 티켓이 있다. 잘 활용하면 교통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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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필수: 기차·버스 지연이 잦으니, 공식 앱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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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준비: 장거리 이동에는 현지 간식과 물을 챙기자. 열차·버스 안에서 먹는 음식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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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열기: 옆자리 승객과 가볍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훨씬 풍성해진다.
마무리 – 버스와 기차가 가르쳐준 것
외국에서의 국내여행은 단순히 A에서 B로 가는 일이 아니었다. 버스와 기차는 그 사회의 일상과 리듬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교실이었다.
나는 이제 여행을 떠날 때, “얼마나 빨리”보다 “어떻게”를 먼저 묻는다. 차창 밖 풍경, 옆자리 대화, 작은 불편과 우연한 발견… 그 모든 것이 여행의 진짜 본질이었다.
“길 위에서의 시간도 여행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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