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한국에선 불가능 – 외국에서만 가능한 경험담
외국에 살다 보면 가끔 “이건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데, 여기선 자연스럽네?”라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경험들이 모이면, 단순히 문화 차이를 넘어 사회 구조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오늘은 제가 실제로 겪은 ‘한국에선 불가능했을 법한 경험담’들을 정리해본다.
1. 가게 문 앞에 두고 가도 사라지지 않는 물건
🇯🇵 일본에 살 때였다.
동네 슈퍼 앞에 누군가 장바구니를 두고 갔는데, 이틀이 지나도 그대로 있었다.
누가 가져가지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말이다.
한국에서는? 아마 5분 안에 누군가가 가져가거나, 직원이 치워버렸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규칙 준수와 남의 물건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나온다.
한국은 인구 밀집도가 높고, 공간 회전율이 빠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2. 버스 기사가 기다려주는 문화
🇪🇸 스페인에서는 버스 정류장에 뛰어가는 사람이 보이면 기사가 기다려준다.
심지어 문 닫은 뒤에도 두드리면 다시 열어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정시성과 속도가 생명인 한국 대중교통은, 한 명을 위해 멈추면 다른 수십 명의 일정이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사람이 먼저, 시간은 나중”**이라는 태도가 강하다.
효율성 대신 ‘인간적 여유’를 우선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3. 회사에서 ‘휴가 중인 동료에게 연락 안 하기’
🇩🇪 독일 직장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휴가 중인 동료에게 메일이나 전화가 금기시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상사가 휴가 중인 부하 직원에게 연락하면,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휴가라도 최소한 메일은 체크해야지’라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휴가는 권리이자 생산성 유지 장치라는 공감대가 있다.
즉, 개인의 쉼이 존중되어야 조직도 건강해진다는 철학이다.
이건 한국 사회가 아직 배우지 못한 지점일지도 모른다.
4. 공원에서 하루 종일 자리 차지하고 놀기
🇺🇸 미국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에선, 아침부터 돗자리 깔고 하루 종일 있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너무 오래 차지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개념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잠깐만 자리 비워도 “여기 사람 있나요?” 하고 눈치 전쟁이 시작된다.
특히 벚꽃철 같은 날은 자리 경쟁이 전쟁 수준이다.
넓은 땅과 여유로운 인구 밀도, 그리고 ‘내 공간은 내가 지킨다’는 개인주의 문화가 만든 차이였다.
5. 대형 마트에서 반려동물 동반 쇼핑
🇫🇷 파리의 까르푸에서는 반려견을 데리고 장을 보는 사람이 흔하다.
카트에 강아지를 태워 두고 쇼핑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한국 대형마트에선 불가능하다.
위생 문제, 다른 손님 불편, 규제 등 현실적 장벽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동물이 가족으로 완전히 인정되며, 사회 전반의 포용적 시선이 제도와 규칙까지 반영된 것이다.
6. 현금 없는 생활, 완벽한 디지털 결제
🇸🇪 스웨덴에서 놀랐던 건, 1년 동안 현금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거지조차 카드 단말기를 들고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디지털 결제가 완벽히 정착되어 있었다.
한국도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모바일 결제가 강력하지만, 아직 ‘현금만 받는 곳’이 존재한다.
스웨덴은 정부·사회·개인 모두가 현금 없는 사회를 합의한 케이스라, 한국과 성격이 다르다.
7. 낯선 사람과 하루 종일 대화하기
🇳🇿 뉴질랜드에서 하이킹을 하다 만난 현지인과 5시간 동안 대화하며 걷고,
끝날 땐 서로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고 헤어졌다.
한국에서는 보통, 오랜 대화가 이어지면 연락처 교환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순간의 인연은 순간에 머문다”**는 문화가 있다.
짧지만 진심 어린 교류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8.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토양
이런 경험들을 돌아보면, 단순히 “외국이니까 다르다”가 아니다.
사회의 구조, 문화적 합의, 사람들의 가치관이 모여서 ‘한국에선 불가능한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규칙을 따르는 태도, 개인의 권리 존중, 여유로운 시간 감각, 공간적 조건…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다.
결론 – 차이를 인정하고 배우기
외국에서의 이런 경험은, 한국 사회의 단점을 꼬집는 게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다른 나라에선 이미 일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차이를 경험할수록, 나는 더 유연해졌다.
“이건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동시에 “언젠가 한국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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